현대판타지 · 회귀

살아 있는 사람의 물건

1화  ·  삼천 원

동생은 죽던 날 삼천 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택시비도 아니고 삼천 원. 그게 사람의 마지막 부탁이 될 줄 알았으면 용도 같은 건 묻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물었다.

왜.

걔는 됐다고 했다.

그 뒤로 십일 년을 살았다. 죽은 사람 주머니를 뒤지고, 지갑 안쪽에 붙은 사진을 떼어 내고, 주인 없는 휴대전화가 울리면 배터리부터 뺐다. 처음엔 전화를 받았다. 몇 번 받고 나니 못 하겠더라.

길드에서는 우리를 회수반이라고 불렀다. 유가족 앞에서는 수습반. 월급명세서에는 환경미화.

마지막 출동지는 무너진 서울역이었다. 다른 놈들은 마석을 챙겨 나갔고, 나는 끊어진 가방끈에 팔이 걸렸다. 빠져나오겠다고 버둥거릴수록 천장이 조금씩 내려왔다.

그때 가슴 주머니의 시계가 울렸다.

동생 유품이었다. 열두 시에서 멈춘 싸구려 전자시계. 전지가 없어도 감정은 됐지만, 돌아가는 건 처음 봤다.

내 능력은 물건에 남은 마지막 기억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헌터들이 검기를 뽑는 동안 나는 지갑 주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시계에서는 늘 같은 장면이 나왔다. 쏟아지는 물, 철문, 문 아래로 뻗은 동생 손.

이번에는 작은 글씨가 하나 더 보였다.

[주인에게 돌려주시겠습니까?]

손을 뻗을 틈도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턱을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까지 하고 나서 깔려 죽었다.

눈을 떴을 때는 버스였다.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 오빠. 삼천 원만.

삼키던 김밥이 목에 걸렸다.

― 여보세요? 아, 됐다. 너 또 왜냐고 할 거지.

“아니.”

내 목소리가 이상했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몸을 조금 옮겼다.

“보낼게.”

― 웬일이래.

“지금 어디야.”

― 가게. 어디겠어.

차창 밖으로 화양역 3번 출구가 지나갔다. 철거된 지 구 년 된 약국 간판도 있었다. 나는 차창에 이마를 댔다. 버스가 방지턱을 넘으며 이가 부딪쳤다.

아팠다.

날짜를 두 번 확인했다. 오후 여섯 시 이십이 분. 최초의 균열이 열리기까지 팔 분 남아 있었다.

“수연아. 가게에서 나와.”

― 왜.

“불날 거야. 지하상가에.”

― 뭐? 어디서?

나는 하차 벨을 눌렀다. 이미 빨갰는데 또 눌렀다.

“설명은 만나서 할게. 지갑도 두고 그냥 올라와. 3번 출구로. 전화 끊지 말고.”

잠깐 말이 없었다.

― 오빠 술 먹었어?

“내 말 좀 들어.”

말끝이 터졌다. 버스 안 사람들이 돌아봤다.

수연이 입을 다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냉장고 닫는 소리가 났다.

― 알았어. 화내지 마. 나갈게.

주머니를 더듬었다. 시계는 없었다.

버스에서 동생의 전화를 받은 순간

정류장에서 역까지 뛰는 데 이 분이 걸렸다.

스물넷 몸이 이 모양이었나. 예전처럼 다리에 마력이 감기지 않았다. 편의점 야간 근무와 컵라면으로 만든 몸이 버틸 리 없었다.

계단 위에서 파란 앞치마를 찾았다. 나오는 사람은 많은데 수연이 없었다.

“어디야?”

― 올라가고 있는데, 잠깐만.

“잠깐이 왜 필요해.”

― 애가 있어.

역 입구로 사람들 머리가 쏟아졌다. 누군가 계단에서 넘어졌고 뒤따르던 남자가 그 사람 등을 밟았다. 욕설이 터졌다. 아직 비명은 아니었다.

― 아까 삼천 원 달라고 한 거. 애가 혼자 와서 빵을 집는데 돈이 없대서…….

“애 데리고 와. 데리고 오면 되잖아.”

― 걔가 다시 내려갔어. 엄마 찾는다고.

난간을 넘어 내려가다 사람 어깨에 부딪쳤다.

“너는 나오라고!”

대답 대신, 멀리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내려가지 마!”

전화가 끊겼다.

전생에서도 수연은 제과점에 없었다. 시신은 반대편 방재실에서 나왔다. 나는 그 애가 출구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다. 길치였으니까. 구청 옆 골목에서도 길을 잃는 애였으니까.

계단 아래에서 찬 바람이 올라왔다. 여름인데 입김이 났다.

역 시계가 여섯 시 삼십 분을 가리켰다.

사람들 뒤로 셔터가 떨어졌다. 마지막 틈으로 누군가 우산을 밀어 넣었다. 우산살이 과자처럼 부러졌다.

형광등이 차례로 꺼졌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 한수연 고객님. 분실물 보관소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때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의 방송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남자가 “네, 여기요!” 하고 외쳤다.

뒤이어 구두 굽이 바닥을 긁었다. 짧게, 세 번.

나는 소리가 난 쪽을 보지 않았다.

화양역 참사 사망자 서른여섯 명. 이름이 불렸을 때 대답한 사람부터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 년 뒤에야 밝혀졌다.

나는 보고서를 전부 읽었다. 수연이 마지막까지 혼자였는지 알고 싶어서.

휴대전화 플래시를 켰다. 불빛이 십 미터 앞에서 뚝 잘렸다.

“수연아.”

부르려다가 이를 악물었다.

처음엔 안내 방송, 그다음에는 가족의 목소리. 가짜라고 알아도 소용없었다. 엄마가 부르면 대답부터 나왔다.

제과점 셔터는 반쯤 열려 있었다. 계산대에 동전이 흩어져 있고, 팥빵 하나가 봉투에 들어 있었다. 수연은 봉투 입구를 두 번 접었다. 빵이 안 마른다나. 고작 몇 분 뒤면 먹을 건데도 꼭 그랬다.

나는 빵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가게 뒤 직원 통로로 들어갔다. 사진으로 수백 번 본 길이었다. 왼쪽은 화장실, 오른쪽은 방재실. 사망자 대부분은 왼쪽에서 발견됐다. 여자화장실 환풍구가 바깥과 연결돼 있어서.

앞에서 푸른 불빛이 흔들렸다.

수연이 꼬마의 입을 막은 채 벽에 붙어 있었다. 아이 발에 흰 운동화가 한 짝만 남아 있었다.

나를 보자 수연의 눈이 커졌다.

“오…….”

나는 손바닥으로 내 입부터 막았다.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턱을 타고 흘렀지만 닦을 손이 없었다.

안고 싶었다. 이번에는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대신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썼다.

『아는 목소리여도 대답하지 마.』

수연이 화면을 읽고 내 손목을 잡았다. 아플 만큼 세게.

지하 통로에서 다시 만난 남매

아이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엄마.

아이는 통로 끝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여자가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다. 마트 조끼, 손목의 머리끈, 장바구니. 플래시가 닿을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나는 아이를 돌려세웠다.

그 여자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바닥에는 맨발 자국이 남았다.

방재실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잠가 봐야 소용없다. 안에서 이름에 대답하는 사람이 생기면, 놈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수연이 아이를 책상 아래 앉혔다.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딸꾹질만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팥빵을 꺼내 줬다.

수연이 나를 봤다. 이 와중에 그걸 챙겼냐는 얼굴이었다.

애 입에 뭐라도 물려 놔야 한다. 그렇게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봉투 접힌 걸 보고 챙겼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방재실 뒤에는 배수용 점검구가 있었다. 이 방에서 발견된 시신은 둘. 수연과 신원 미상의 여자아이.

바로 이 아이였다.

“몇 살이니.”

아이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지금부터 숨바꼭질할 거야. 누가 찾아도 대답하면 안 돼.”

수연이 내 소매를 당겼다.

“애한테 거짓말하지 마.”

목소리가 갈라졌다. 작아도 평소 말투가 났다.

“술래가 엄마 목소리도 내.”

아이 눈높이에 앉은 수연이 말했다.

“근데 엄마 아니야. 언니도 속을 뻔했어. 그러니까 우리 셋 다 입 꽉 다무는 거야. 알았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점검구 손잡이를 잡았다. 돌아가지 않았다. 바닥과 뚜껑이 녹으로 붙어 있었다.

전생의 수연도 여기까지는 왔다.

뚜껑 가장자리에 손톱이 부러져 있었다는 감식 기록이 떠올랐다.

나는 드라이버를 찾아 틈에 쑤셔 넣었다. 힘을 주자 끝이 휘었다. 욕이 목까지 올라왔다. 공구함에는 작은 스패너와 절연테이프뿐이었다.

― 수연아.

문밖에서 엄마가 불렀다.

죽은 지 열여덟 해 된 엄마였다. 아니, 지금은 칠 년인가.

― 엄마 손 시려. 문 좀 열어 줘.

수연의 어깨가 움찔했다. 나는 동생 뒤통수를 손으로 눌렀다. 수연이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걸 들으면서 손톱이 빠질 때까지 긁었구나.

나는 공구를 내려놓고 뚜껑에 손을 댔다. 감정. 돌아온 뒤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다. 제발. 이거 하나는.

손바닥 아래로 빛이 스몄다.

남자가 보였다. 빗물에 젖은 작업복. 왼손 약지에 감긴 반창고. 그는 점검구를 열려다 똑같이 낑낑댔다.

‘이걸 또 잠가 놨네.’

남자가 뚜껑을 발로 두 번 찼다. 오른쪽 아래. 그리고 손잡이를 당기지 않고 안으로 밀었다.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나는 그대로 했다.

철컥.

손잡이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가 올라왔다. 사다리는 세 칸. 배수로 끝에는 밖으로 통하는 철망이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탈출로. 구조대는 지상의 철망을 잘라 이 방으로 진입했다.

안에서는 못 연다.

휴대전화는 통신 불가였다. 긴급전화를 눌러도 연결되지 않았다.

수연이 화면을 보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내 건 돼.”

동생의 액정 왼쪽 위에 안테나가 한 칸 떠 있었다.

통신사가 달랐다.

나는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멍하니 있었다. 십일 년 동안 외운 보고서에도 이런 건 안 적혀 있었다.

“뭐 해. 신고해.”

수연이 재촉했다.

철망이 뜯겨 나가는 소리는 십이 분 뒤에 들렸다.

우리는 배수로에 엎드려 있었다. 아이를 앞에, 수연을 가운데, 나를 맨 뒤에 두었다. 누군가 계속 이름을 불렀다. 엄마 목소리였다가, 아버지였다가, 군대 선임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이렇게 많은 목소리로 기억하고 있는 줄 몰랐다.

마지막에는 수연이 불렀다.

― 오빠. 나 두고 가?

내 앞의 수연이 뒤로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진짜 손은 차갑고 끈적했다. 긴 손톱 하나가 손등을 찔렀다. 그것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밖에서 소방관이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나가고 수연이 나갔다. 내가 빠져나오는 순간 배수로 안쪽에서 물이 솟았다. 시커먼 물이 내 신발 밑창을 훑고 철망 바깥으로 한 방울도 넘어오지 못했다.

나는 도로에 주저앉았다.

수연이 소방관에게 뭔가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의 옷차림, 마트 이름, 아직 안에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나는 그 애 운동화만 보고 있었다. 두 짝이었다. 손가락도 열 개였다.

수연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야.”

수연이 내 뺨을 툭 쳤다. 한 번 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삼천 원.”

“……뭐?”

“보내 준다며.”

웃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수연이 내 입을 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가져가 송금 화면을 열었다.

“비밀번호 아직 내 생일이냐? 바꾸라니까.”

이 말도 십일 년 만이었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을 때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시계 모양으로 눌린 자국이 있었다. 그 위에 감정 결과가 떠올랐다.

[유품 반환 완료.]
[반환 비용: 잔여 수명.]

글씨가 잠깐 깜빡였다.

[미납.]

나는 손을 오므렸다.

역 건너편 횡단보도에 서울역에서 입었던 회수반 작업복이 보였다. 깨진 안전모, 피 묻은 소매. 방금 전까지 내가 누워 있던 잔해가 어깨에 붙어 있었다.

놈이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이었다.

보행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