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봉투는 안에서 잠기지 않는다.
십오 년 동안 남의 것만 닫아 봐서, 그걸 마지막 날에야 알았다.
지퍼 손잡이는 바깥에만 달려 있었다.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봤지만 손톱 끝이 고리에 겨우 걸렸다가 미끄러졌다. 두 번 해 보고 관뒀다.
"반장님. 이거 안에서 안 닫혀요."
대답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반장님 봉투는 칠 년 전에 내가 닫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이었다. 누가 수거하러 오면 찾기 쉬우라고 골랐다. 올 사람이 없다는 건 알았다. 그냥 버릇이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발목까지만 남아 있었고, 하늘은 사흘째 쩍 갈라진 채였다. 그 틈으로 뭐가 내려다보는지는 모른다. 그런 건 헌터들이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헌터들은 먼저 갔다. 꽤 많이는 내가 닫았다.
S급이든 F급이든, 봉투에 들어가면 다 같은 사이즈였다.
나는 게이트 사후처리반이었다. 줄여서 수거반. 헌터들은 봉투쟁이라고 불렀다.
게이트가 닫히면 들어가서 남은 걸 치운다. 몬스터 사체는 협회로, 마석은 길드로, 사람은 봉투로.
F급 각성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정확히는 내 스킬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거 하나였다.
신원 확인용으로는 그만이었다. 얼굴이 없어도, 반만 남아도, 손끝만 닿으면 이름이 떴다. 덕분에 십오 년 내내 수거반이었다. 승진도 없고 이직도 없었다. 월급은 헌터 일당의 삼십 분의 일이었다.
"성이 염씨라 시체 닦는 일 하냐?"
헌터들이 제일 좋아하던 농담이었다. 처음 듣는 척 웃어 주는 것까지가 일이었다.
황 반장님은 장례지도사 출신이었다. 이십 년 동안 염만 하다가 게이트가 터지고 수거반으로 왔다.
첫 현장 끝나고 나한테 순댓국을 사 준 사람이었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게 더 무서웠다.
그 양반이 나한테 제일 먼저 가르친 건 지퍼 닫는 법이 아니었다.
"닫기 전에 이름 한 번 불러 줘라.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다."
그래서 불렀다. 한 명도 안 빼고, 삼만 천이백여덟 번.
반장님 봉투를 닫을 때도 불렀다. 황병철 씨. 대답이 없는 게 당연한데, 그날은 좀 기다렸다.
이제 내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은 없었다.
손에 쥔 걸 내려다봤다.
붕어빵 모양 키링. 칠이 다 벗겨져서 이제는 그냥 누런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원래는 입에서 팥이 삐져나오는 그림이었다. 슈크림 말고 팥.
명단 첫 줄 주인의 것이었다.
내가 처음 닫은 봉투였다. 사실 그날은 봉투도 없었다. 나는 그 애를 타 넘고 기어서 빠져나왔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게 손에 쥐여 있었다. 언제 쥐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지퍼를 한 번 더 당겨 봤다. 역시 안 닫혔다.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갈라진 하늘에서 하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을 감았다.

* * *
"이번 역은 을지로입구, 을지로입구역입니다."
사람 냄새가 났다.
땀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 누가 들고 탔는지 모를 떡볶이 냄새. 살아 있는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있어야만 나는 냄새였다. 마지막으로 맡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현장에서는 늘 반대쪽 냄새만 맡았으니까.
눈을 떴다.
지하철이었다. 문 위 노선도에서 '을지로입구'가 초록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손을 내려다봤다. 지퍼에 찝혀 생긴 흉터가 없었다. 몬스터 체액에 녹아 반들반들해진 손끝도 없었다. 멀쩡한 스물셋짜리 손이 액정 깨진 폰을 쥐고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10월 8일 목요일 오후 6:45. 배터리 2%.
10월 8일.
이 날짜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정식 명칭은 '10·8 1차 개문 사태'였는데, 아무도 그렇게 안 불렀다. 다들 그냥 '시팔'이라고 했다. 시월 팔일. 욕인지 날짜인지 헷갈려서 오히려 입에 착착 붙었다. 추모식 사회자들만 해마다 고생했다.
회귀였다.
군대에서 읽던 웹소설에 이런 게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로또 번호부터 떠올리고 비트코인을 샀다.
나는 로또를 사 본 적이 없다. 비트코인 차트는 들여다본 적도 없다. 십오 년 동안 내가 외운 거라곤 딱 하나였다.
삼만 천이백여덟 줄짜리 명단.
그 무렵의 나는 을지로 편의점 알바였다. 시급 만 삼백이십 원. 저녁은 폐기 삼각김밥. 오늘도 출근하는 길이었을 거다.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교복 입은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줄 이어폰을 끼고, 화면 밝기를 끝까지 올린 채 뭘 보면서 혼자 킥킥대고 있었다. 무릎에 올린 가방 지퍼에서 뭔가 달랑거렸다.
붕어빵 키링.
칠이 멀쩡했다. 입에서 팥 삐져나오는 그림까지 전부.
그 애 얼굴을 다시 봤다. 웃고 있었다.
명단에는 얼굴이 안 나온다.
그리고 그 애 머리 위에, 노란 꼬리표가 떠 있었다.
폰을 다시 봤다. 18시 45분.
칠 분.
칸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꼬리표는 하나가 아니었다. 손잡이에 매달린 정장 차림 남자. 노약자석에서 조는 할머니.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커플. 출입문에 기대 셀카봉을 든 남자.
세어 보니 열둘이었다. 맞는 숫자였다. 그날 이 칸에서 나온 사람이 열둘이었으니까. 걸어서 나온 사람 말고.
이름도 전부 알았다. 정장 남자는 0004, 김형준, 서른넷. 넥타이에 김칫국물 자국이 있었다. 그날도 있었다.
셀카봉 남자는 폰에 대고 떠들고 있었다.
"와, 여러분. 한글날 전날 퇴근길 2호선, 이거 실화냐고요. 숨을 못 쉬겠어, 진짜."
저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수거반 신입 교육 1교시가 저 사람 방송이었으니까.
'0번 영상.'
인류가 처음으로 몬스터를 찍은 영상이었다. 원래 제목은 '2호선 멈춤ㅋㅋ 한글날 전날 실화?'였다. 인류 최초치고는 좀 없어 보이는 제목이었다.
구독자 팔백 명짜리 채널이었다. 영상은 조회수 삼억을 찍었다. 찍은 사람은 그걸 못 봤다.
나는 백 번도 넘게 봤다. 18시 47분, 열차가 선다. 49분, 불이 나간다. 50분, 터널 앞쪽에서 소리가 난다. 51분, 첫 비명.
그리고 17분 3초쯤, 구석에 웅크린 남자 등짝이 딱 2초 나온다.
그게 나다.
그날 내가 산 이유는 간단했다. 폰이 꺼져 있었다. 보조배터리를 집에 두고 나와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나방'이라고 불렀다.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는데, 불빛에 달려드는 것 하나만은 똑같아서.
그날 이 칸에서 불을 켜고 있던 사람은 전부 죽었다.
덜컹.
열차가 터널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앞 열차와의 간격 조정을 위해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아, 진짜."
"한글날 전날에 왜 이래."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졌다. 폰 화면들이 하나둘 더 밝아졌다.
18시 47분. 영상이랑 똑같았다.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그날처럼 구석에 처박혀서 숨만 참으면 산다. 폰도 어차피 곧 꺼진다.
맞은편에서 붕어빵이 달랑거렸다.
십오 년을 닫았다.
한 번쯤은, 안 닫아 봐도 되지 않나.
출입문 옆 비상 인터폰부터 눌렀다.
"네, 기관삽니다. 말씀하세요."
"밖에 나가지 마세요. 무슨 소리가 나도요."
"예? 승객분, 그게 무슨―"
끊었다. 그날 기관사는 50분에 확인하러 선로로 내려갔다. 0번 영상에는 안 나온 첫 번째 사망자였다. 이번엔 들을지 모르겠다. 사람은 원래 잘 안 듣는다.
'몬스터가 옵니다!' 하고 외치면? 미친놈 소리 듣고 끝이다. 스물세 살의 나였어도, 지하철에서 그런 소리 하는 놈이 있으면 폰부터 꺼냈을 거다. 찍으려고.
불을 켜고.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폰을 끄게 만들 말이었다.
18시 49분.
팟.
불이 나갔다.
짧은 비명, 웅성거림. 그리고 여기저기서 하얀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날처럼.
나는 일어섰다. 무릎에서 소리가 안 났다. 이상하게 그게 제일 실감 났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입니다."
현장 목소리가 나왔다. 크지 않은데 멀리 가는 목소리. 반장님한테 배웠다. 겁먹은 사람들한테는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낮게, 또박또박. 이미 정해진 일을 알려 주듯이.
"지금 터널 안에 가스가 새고 있습니다. 휴대폰 손전등, 화면, 라이터, 전부 꺼 주십시오. 스파크 나면 위험합니다."
웅성거림이 번졌다. 불빛 몇 개가 꺼졌다. 몇 개는 안 꺼졌다.
"폰 불빛에서 무슨 스파크가 나요?"
정장 남자였다. 머리 위에서 노란 꼬리표가 흔들렸다.
"끄라잖아! 끄라면 좀 꺼요!"
어둠 저편에서 아주머니 목소리가 날아왔다. 대한민국 지하철에서 저 목소리를 이기는 사람은 없다. 정장 남자의 화면이 꺼졌다.
셀카봉 남자만 예외였다.
"여러분, 가스래요, 가스. 크크. 공사 직원분이 계시대요."
그 사람 화면에서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내려다봤다. 회색 후드티였다.
맞은편은 아직 환했다. 다은이는 이어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들은 얼굴이었다. 불 나간 것도 이제야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는데, 화면은 켜 둔 채였다.
한 걸음에 건너가 그 애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뭐, 뭐예요!"
"쉿."
"아저씨 뭔데요? 손 치워요. 진짜 신고할―"
스물셋한테 아저씨는 좀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속은 서른여덟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은아."
그 애가 굳었다.
"불 끄자. 딱 오 분만."
셀카봉 불빛이 비스듬히 닿아서, 그 애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였다.
"……저 알아요?"
알지. 십오 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불렀는데.

딸깍.
앞쪽이었다. 운전실 너머, 터널 안쪽.
딸깍. 딸깍딸깍.
누가 손톱으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런 게 수십 개. 소리는 운전실을 지나, 벽을 타고 이쪽으로 번져 왔다.
다은이가 황급히 화면을 껐다.
"어? 여러분, 밖에 뭐 있는 것 같은데?"
셀카봉 남자가 창문에 폰을 바짝 들이댔다. 칸 안에서 제일 밝은 불빛이 터널을 향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지하철 비상 코크 위치는 눈 감고도 안다. 출입문 옆 좌석 밑, 빨간 덮개. 사백 번은 넘게 열어 봤다. 안에 있는 사람을 꺼내려고.
덮개를 뜯고 손잡이를 당겼다. 치익,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문틈에 손가락을 걸고 억지로 벌렸다. 한 뼘.
"야, 뭐 하는―"
셀카봉을 낚아챘다.
손전등까지 켜서, 열차 앞쪽 터널 깊숙한 데로 있는 힘껏 던졌다.
하얀 불빛이 빙글빙글 돌며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내 폰! 야, 이 미친―"
셀카봉 남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살고 싶으면 입 다물어요."
창밖으로 뭔가 지나갔다.
하나, 둘, 셋. 그다음부터는 세지 않았다.
개만 한 덩치. 털 없는 허연 가죽. 관절이 하나씩 더 달린 다리.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매끈했다. 그것들이 창문 바로 바깥을 긁으며 앞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불빛이 떨어진 쪽으로.
문틈으로 비린내가 훅 밀려들었다. 십오 년 동안 작업복에서 안 빠지던 냄새였다.
누군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칸 안의 모두가 그걸 봤다.
이번엔 아무도 폰을 켜지 않았다.
살아 있는 놈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십오 년 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늘, 다 끝난 다음에 도착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은이가 내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떨림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터널 저 안쪽에서 셀카봉 폰이 아직 빛나고 있었다. 방송도 아직 켜져 있을 거다.
우두둑.
불빛이 꺼졌다.
이번 0번 영상은 폰이 뜯어먹히는 장면으로 끝나겠지. 조회수는 좀 덜 나올 거다.
대신 이번엔, 찍은 사람이 그걸 볼 수 있다.
손바닥 안에서 셀카봉 남자가 웅얼거렸다. 손을 뗐다.
"……저, 저거 뭐예요?"
"나방이요."
"나, 나방?"
"불 좋아해요."
그 사람은 더 묻지 않았다.
운전실 쪽은 조용했다. 문 열리는 소리는 끝까지 안 났다. 기관사도 이번엔 들은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누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총각. 공사 직원 아니지?"
"……네."
"잘했어."
그게 다였다. 누구한테 잘했다는 소리를 들은 게 몇 년 만인지 몰랐다.
눈앞에서 노란 꼬리표가 하나씩 꺼졌다.
정장 남자. 할머니. 커플. 셀카봉 남자 머리 위도 비었다. 폰값은 못 물어 준다. 통장에 삼만 이천 원 있다.
하나가 남았다.
다은이 머리 위 꼬리표만 꺼지지 않고 있었다. 폰을 켰다. 18시 52분.
숨을 참았다. 꼬리표가 한 번 깜빡였다. 두 번.
다은이 가방에서 붕어빵이 달랑거렸다.
십오 년 동안 내 주머니에 있던 게 원래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저기요."
다은이가 소매를 당겼다. 목소리가 아직 떨렸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잠깐 말이 안 나왔다.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본 게 언제였더라.
내 이름은 늘 수습자 칸에만 있었다. 삼만 번 넘게.
"……염지우."
"염지우."
그 애가 또박또박 따라 불렀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까만 유리창에 노란 불빛 하나가 비쳤다.
내 머리가 있는 높이였다.

수습자 칸에 내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이 적힌 건 처음이었다.
폰을 켰다. 18시 55분. 배터리 1%.
삼 분.
닫기 전에 이름 한 번 불러 줘라. 반장님은 그랬다.
방금,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헛웃음이 났다.
반장님. 이번엔 닫아 줄 사람도 있대요.
십오 년쯤 이르긴 한데.
터널 저 안쪽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딸깍.
1화 끝
